[영화 ] '기생충' 의미해석_ 당신의 피부밑에 파고들 의미를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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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영화제인 칸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5일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예술'과 '대중'사이, '블랙코미디'와 '서스펜스' 사이를 오가며 흥행을 이끌어 가고 있다.

배우 송강호는 "봉준호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고도 표현했던 "기생충"은 지금의 우리사회를 어떻게 담고 있을까?

 

 


 < 내용 > 

친구가 유학을 가게되서 고액과외를 넘겨받게 된 기우는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문서위조하여 박사장네 딸을 과외를하게 된다.
기택의 가족은 아무런 계획없이 살고 있었지만, 박사장네에 가족에게 달라붙어 필요없는 이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자리잡게 되며 박사장네에 기생하게 된다.  
박사장의 아들(다송)의 생일파티를 위해 집을 비우게 된 날, 택의 가족은 박사장네 집에서 파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비가내리면서 블랙코미디의 장르였던 이 영화는 서서히 서스펜스로 장르가 된다. 

 

또한 "기생충"은 학력과 가족관계의 거짓으로 이 기생관계가 언제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있는 기택의 가족을 보며 불편한 탄식을 자아내게하는 영화이다. 이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영화를 해석해보자.

 

 


 < 의미해석 > 

 

 기생충 

제목과 다르게 실제로는 기생충이 나오지는 않다. 하지만 기택의 가족의 이름인 "우(아들), 정(딸), 택(부), 숙(모)"이란 이름은 왜인지 어색하지가 않다.

영화 초반에 기택이 식빵을 먹다가 연가시의 숙주인 꼽등이가  식탁 위에 기어다니자, 혐오스럽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쳐낸다. 기택가족의 숙주였던 박사장의 운명을 암시라도 하는걸까?

이웃집의 인터넷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바뀌자, 기우와 기정은 새로운 와이파이가 되는 스팟을 찾아 화장실의 변기통, 곧 가장 구석진 곳에 기어간다. 마치 기생충이 새로운 숙주를 찾듯이 말이다.

해충에 대한 피해를 막고자 소독약을 치러  기택의 동네를 돌아다니자, 기택은 집안의 벌레들을 없애고자 창문을 열고 소독약가스를 집안으로 들인다. 집안의 해충들을 없애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소독약을 마신 기택의 가족들이 기침하고 괴로워한다. 

비때문에 계획과 달리 박사장의 가족이 빨리 오자, 기택의 가족은 마치 현관문 불이 켜지면 어두운 구석으로 도망가 바퀴벌레처럼 숨는다. 또한 자고있는 박사장 부부 옆 탁자밑에, 기택이 숨어서 기어나오다가 빛을 보고는 멈추는 장면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불을키면 멈추는 바퀴벌레를 연상시킨다. 박사장의 집은 바퀴벌레가 없지만 바퀴벌레같은 것이 존재한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꼽등이에게 기생하는 연가시처럼 누군가에게 빌붙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하층민의 모습이 많이 그려지고 있다.

 

 수석(=계획) 

보통 부잣집에서 볼 수 있는 수석은 자연의 형상을 집안에 놓고 소유함으로써, 인간의 통제권안에 두어 언제든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장식물이다. 

기우의 친구는 재물과 부를 가져온다는 산수경석을 선물해주러 기택의 집을 찾아오면서 그들에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를 계기로 철저한 계획하에 기택의 가족들이 박사장의 집에 한명씩 침투해 들어가 취업하게 된다. 

기우는 수해가 나 체육관에 자게된 기택에게 죽어가는 지하실남자와 가정부 문광에 대해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하루하루 지금처지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최소한 별탈 없이 살 수 있다'는 패배감과 무기력감을 선사한다. 
그에 반해 기우는 수해가 난 집안에서 가정먼저 수석(계획)을 건져내고, 집앞에 노상방뇨하던 남자한테 던지려던 수석을 애지중지 껴안고 잔다. 

자신의 계획을 망쳐버린 지하실남자를 없애기 위한 계획을 세우지만 도리어 자기 자신이 그 수석에 맞아 쓰러진다.
박사장은 거대한 회사 사장으로서 직원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며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반면, 계획없이 살아가던 하층민 기택의 가족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실현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도리어 '머리가 깨지는' 고통만이 수반된다. 
이 세계에서 자신의 '계획'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우는 수석을 다시 강에다가 돌려놓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기우에게는 아버지가 숨어살고있는 집을 사는 원대한 목표가 생기지만 이 또한 실현가능성이 없다. 기우는 아버지 기택이 쓴 모스부호 편지를 해석해내지만 결국 그 답장이 전해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문광의 남편(지하실남자) 

다양한 소재의 의미를 해석하기 이전에, "기생충" 영화에서는 예고편과 그 어떤 자리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있다. 그의 존재가 영화의 스포일러라면 스포가 될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 영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가정부 문광의 남편, 일명 지하실남자이다. 

이 지하실 남자는 대만카스테라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사채업자에게 쫓겨 다니다가, 문광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박사장의 집 숨겨진 지하창고에  숨어서 살고 있다. 자신은 이 지하가 편하다며 이곳에서 태어난 것 같다며 자유를 잃은 지하실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는 박사장을 위해 조명등을 타이밍에 맞게 켜주고, 자신과 달리 사업에 승승장구하는 박사장에 대한 '리스펙트'를 외치며 박사장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찬양함께 무한 신봉을한다. 

근데 이 지하실 남자가 빚에 쫓겨 지하실에 숨게된 것은 마지막으로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망하면서 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기택 역시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잘 안되 엎어졌었다. 결국 기택은 박사장 살인혐의로 쫒겨 지하실남자와 마찬가지로 대저택에 기생하며 지하실에 살게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의 가제'데칼코마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의 인물개인으로 본다면 기택과 지하실남자와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말투의 개그 

박사장의 가장부였던 문광이 북한아나운서 흉내를내며  극중 상황 풍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흐름상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북한의 사회체제와 맞물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치이다.
문광의 남편은 자신과 달리 사업에 성공한 박사장을 무한 신봉하며 '리스펙트'를 외친다. 지하실 태어난 것 같이 지하가 편하다며 만족스럽게 얘기한다. 
또한 평소 아내를 통해 박사장네에서 가져온(훔쳐온) 음식을 받아먹는 그는 아내가 물려주는 젖병을 누워서 무기력하게 빨아먹고, 아내가 까준 바나나를 다소 벌레처럼 오물오물  빨아먹는다. 

대만카스테라 사업이 망해 빚에 쫓겨 지하실(지하벙커)에 숨게 된 그는 자본주의체제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박사장을 병적으로 신봉하며 자유 대신에 타성을 선택한 사회주의 체제의 의미를 담은 인물이기도 하다. 
(타성을 '타인에 의해 내 자유가 거부되는 구속이 아닌,  자신에 의한 새로움 추구를 하지 않는' 의미로 썼습니다.)

 

 계단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보여준 장면 중 하나가 좁고 긴 골목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기택의 가족이 계단 올라갈 때는 대부분 박사장네 집으로 향하고
내려갈때는 무겁고 그 목적은 항상 반지하집이다. 상승과 하강이란 계단을 통해 계급사회를 명확하게 보여준 소재이다. 

 

 

 홍수 

성곽에 둘러쌓이듯 잘 관리된 나무와 잔디밭 밖에 보이지않는 박사장의 마당에서, 기택의 가족은 비내리는 박사장네의 마당이 운치있다며 좋아한다. 그러나 기택의 가족이 집으로내려가면서 기택의 집이 홍수로 물난리가 난 상황임을 이내 알게된다. 부자와 가난한자의 시각차이처럼 그들 또한 몰랐던 것이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상부부터 내려온 물 때문에 물길이 더욱 거세지고, 기우는 자연의 이치처럼 아래로 거세게 미는 물의 흐름을 거부하고, 계단위에 잠시 멈춰 저항해본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하듯, 홍수가 난 집에서 수석(계획)을 챙긴다.

물에 잠기게 된 집에서 기택은 메달을 가져가고, 기우는 수석을 가져가는 반면 기정은 구정물이 솟구치는 변기의 뚜껑에 앉아, 천장에 있는 담배를 찾아 핀다. 집이 재해를 입으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기 마련인데, 기정은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집에서 나가지않고 무덤덤하다.

 전날 밤에는 하류층들이 사는 아래 동네에 물난리가 났는데도 그 다음날에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는 상류층의 저택에서는 가든파티가 벌어지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난다.
홍수로 집을 잃은 많은 사람들과 맨바닥에서 잔 기택가족들과 달리 상류층인 연우는 '전화위복'이라며 아무런 근심없이 파티가 있는 행복한 오늘을 맞이한다. 

 

 

 인디언 

박사장의 아들(다송)은 지하에서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온 지하실남자를 목격한 이후 실신을 하게된다. 미국의 개척시대 쫓겨나지 않기위해 그들의 땅을 지키려했던 인디언들처럼 사건이후 다송은 신을 집을 지키기 위해 인디언이 된다.
다송은 인디언 정신을 본받고자한 덕후이지만, 이 아이는 컵스카우트 단원이란 부유한 백인 아이의 상징이며, 인디언 텐트 모두 인디언을 쫓아내고 살해했던 미국에서 직구하여 놀이로 즐기고 있다. 

 

 모스부호  

극중 박사장의 아들(다송)은 유일하게 모스부호를 알아듣는 상층민이다. 지하실 남자가 보내는 신호를 모스부호임을 눈치채지만 의미없는 자음과 모음의 나열로 제대로 해독할 수 없었으며,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박사장의 딸은 동생을보고 "쟤 천재인 척하는 거다"라고 한 말을 연장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우는 기택이 모스부호를 보내는 것임을 알아채고 기택이 보내는 장문의 편지까지 모두 해독해낸다.  

모스부호가 하층민에게는 생존을 위한 의사소통이였지만, 상층민이었던 박사장의 아들(다송)에게는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다. 비에 쓸려나가는 기택의 집과는 대조적으로 빗물에 끄떡없는 텐트 안에서 모스부호를 해독하는 박사장의 아들(다송)이 하층민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말이다.

 

 냄새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않는 지하실의 냄새'는 마치 기택의 가족이 학력위조 등으로 겉은 신분세탁을 할 수 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현대사회의 계층구조임을 말한다.

박사장은 '기택은 다 좋은데 안좋은 냄새가 난다'며 그를 안좋게 평가하고, 연교는 차안에서 기택에게 나는 냄새를 맡고 코를 막고 기택을 향해 발을 올린다.

박사장은 기택의 딸이 칼에 맞아 죽어가는것은 안중에도 없이 기절한 자신의 아이만 챙기며, 기택과 마찬가지로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났던 지하실남자의 냄새에 혐오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냄새는 빈부층의 계급을 나누고 그 계층으로 사람을 평가함을 의미한다.

 

 선 

박사장은 선일넘지말라며 강조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기택은 박사장의 선을 넘게되고, 박사장은 죽어가는 기택의 딸을 무시하고 기절한 자기 아이만 챙겨 피해나가며, 기택과 같은 지하실냄새가 났던 남자의 냄새를 맡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서로 선을 넘어 공존할 수 없는 관계에 이르고, 기택은 분노를 못 이기고 박사장에게 무계획적으로 칼을 꽂아버린다.

박사장에게  절대로 넘지 말아야할 보이지 않는 선은 인간의 존엄성이여야 마땅하지만, 박사장에게는 수직으로 철저하게 분리된 사회계층의 선이다.

 

 지하공간 

기택은 지하에 어떻게 사람이 살수 있냐며 놀라지만 기택의 집에서 홍수가 났을 때, 지하실남자가 살고있는 지하와 홍수로 물이 가슴까지 불어있는 기택의 집안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박사장의 가정부였던 문광은 뇌진탕으로 지하실 변기에 아래로 토를 하지만, 홍수로 역류하는 기택의집 화장실의 오물이 위로 솓구쳐오르는 모습또한 교차적으로 보여주므로써 같은 하류층임을, 그리고 기택과 문광의 가족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술 

영화 앞장면에서는 기택의 가족들이 저렴한 맥주를 다같이 마신다. 이 가족들이 박사장네에 취업했을 때, 엄마만 저렴한 맥주를 마시고 나머지 가족들은 비교적 비싼 수입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박사장의 아들 생일로 박사장의 가족들이 집을 비웠을 때는 고급양주를 마신다.
기택의 가족에게는 어느 음식보다 더 유흥의 대표인 술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박사장아들(다송)의 그림 

박사장의 아내(연교)는 아들이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들이 한밤중에 목격한 지하실 남자의 몽타주였다.

 

 성욕 

 박사장과 연교의 애정씬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관객도 있겠지만, 계층을 수직적으로 다룬 이 영화에서는 필요한 장치일 거라 보여진다. 박사장의 집 지하실이 열리면서 잔뜩 쌓아올려진 콘돔과 함께 이는 빈민층과 부유층 상관없이 성욕을 지닌 같은 인간을 표현한다.

 

 거실 

박사장의 집 거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햇빛가득한 넓은 정원이다.
반면 기택의 집 반지하 거실에서는 보이는 것은  밤마다 창문에 노상방뇨하는 술주정꾼이다.

 

 언어 

박사장가족는 간간히 영어를 쓰지만, 기택가족은 욕설을 쓴다.

 

 기우친구 민혁 

민혁이 유학을 떠나있는동안 박사장의 딸 다혜의 과외를 대신 봐달라고 기우에게 부탁한다. 민혁은 다혜를 좋아하지만 자신 주변에 있는 공대생놈들에게 못맡기겠으니 너한테 맡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너 따위 고졸 백수따위는 부잣집 따님을 꼬실 능력조차 없을테니 안심하고 유학을 떠나겠다"는 상류층의 기만일 수 있지 않을까?

 

 


 < 영화의 결말 예상 + 마무리 > 

아들 기우의 계획대로, 기택은 대저택의 지하실에서 나올 수 있을까?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살 수 없듯, 
기택은 박사장이 죽자 또다른 주인의 집 아래에서 숨어지낸다. 

기생충이 숙주가 될 수 없듯, 
하류층인 기택의 아들(기우)은 상류층이 될 수 없고 결국 기택은 지하실에서 자유롭게 나올 수 없다. 

기생충이 숙주를 떠나면 생존에 위험하듯, 
기택이 지하실을 나오면 박사장을 살해한 그에게는 사회적 자유는 없다. 기택과 '데칼코마니'인 지하실남자가 지하실에서 나왔던 순간처럼, 어쩌면 기택이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서 햇빛 가득한 곳으로 나온다는 것은 지하실남자와 같은 운명을 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기생충은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열린결말이라기보다 닫힌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기존의 봉준호감독의 영화와 달리, 개인의 저항과 이념적 도전은 있을지언정 수직의 사회구조의 큰 변화는 없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체제는 더이상 그런 공격으로는 무너지지 않고, 바로 우리 자신이 사회체제라는 숙주 안에 이미 뿌리깊게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실 남자는 상류층인 박사장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반면, 같은 하류층인 기택의 가족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서로 먹겠다고 밥그릇 싸움하듯이 말이다. 이 또한 현재 우리의 안타까운 하류층 간의 삶을 보여준다.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현실적이어서 다소 우울해지고 어두워지는 이 영화는, 빈부격차라는 만국공통의 현실을 한국사회에 빗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생충"이은 판타지적 계층 전복이 아닌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현실적으로 던지고 있는 영화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당신도 많은 생각이 들었을 영화,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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